옥상에서 만나요
🔖 웨딩드레스 44
"남편이 문제가 아니야. 내가 제도에 숙이고 들어간 거야. 그리고 그걸 귀신같이 깨달은 한국 사회는 나에게 당위로 말하기 시작했지. 갑자기 모두가 나에게 '해야 한다'로 끝나는 말을 해. 성인이 되고 나서 그런 말 듣지 않은지 오래되었는데 대뜸 다시. 남편과 나는 같은 시험에 붙었잖아. 그런데 가족들이 내게만 '살살 다닐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해. 왜 나는 살살 살아야 하지? 왜 그게 당연하지? 왜 나한테 그렇게 말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굴욕적이야."
거기까지 말하고 열다섯번째 여자는 입 밖으로 말해서 더 분명해지는 것들을 잠시 가만히 헤아렸다.
🔖 여자는 출근하는 남편 앞에서 문어 춤을 추었다.
"비켜, 이 타코야끼야."
"뭐라고? 어떻게 그렇게 말 한마디로 나를 토막 칠 수 있어?"
🔖 이혼 세일
어쩌면 다들 이재보다도 이재가 이끌고 다니는 공기 같은 것을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함께 있으면 심장이 약간 느리게 뛰게 되는 감미로운 공간 장악 능력 같은 것 말이다. 이재의 반경에선 모든 모서리와 테두리가 달라졌다.
🔖 효진
혹시 나의 특징은 도망치는 능력이 아닐까? 누구나 타고나게 잘하는 일은 다르잖아. 그게 내 경우에 도주 능력인 거지. 참 잘 도망치는 사람인 거야. 상황이 너무 나빠지기 전에, 다치기 전에, 너덜너덜해지기 전에 도망치는 사람.
...
적당히 차가운 곳으로 도망쳐 잠시 숨을 고르는 것, 거기서 얻는 것들은 분명히 있어.
🔖 옥상에서 만나요
너라면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모든 사람 이야기는 사실 절망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그러니 부디 발견해줘, 나와 내 언니들의 이야기를. 너의 운명적 사랑을.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기이한 수단을. 옥상에서 만나, 시스터.